트럼프 대통령은 영어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Tariff(관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관세를 정말 사랑한다고도 했다. 현재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철강과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같은 전략 산업부터 소비재까지, “미국을 지킨다”는 명목 아래 무거운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관세는 국가의 교역 질서를 조정하는 정책 수단이지만, 동시에 정치적 지지층 결집을 위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결국 이런 관세 부과의 실제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관세의 경제적 효과를 살펴보면, 우선 단기적으로는 수입품 가격 상승을 통해 국내 산업 보호 효과가 나타난다. 미국 내 철강·자동차 업체들은 저가 수입품과의 경쟁 압력이 줄어들고, 가격을 올려도 일정 수준의 수요를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보호받는 산업의 기업과 해당 업종 근로자들이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가 된다. 그러나 이 효과는 제한적이다.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는 더 비싼 제품을 구매해야 하고,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다.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미국 기업들은 원가 부담이 늘어나 경쟁력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또한 무역 상대국은 보복 관세로 맞서며 농산물이나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 기업의 수출길을 막는다. 결국 농업 외에도 수출 의존도가 높은 다국적 기업들은 피해를 본다. 미국 내 소비자와 수출 산업이 희생하는 반면, 특정 보호 산업과 그 종사자들만이 단기적 이익을 얻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치적으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일자리 지킴이’ 이미지를 강화하여 자신의 지지 기반인 러스트 벨트 노동자들의 표심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거둔다. 결국 가장 큰 이익은 경제 전반이 아니라 정치적 자산으로 귀결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그 파급 효과는 적지 않다. 철강 산업은 미국이 반복적으로 보호무역 장벽을 세워온 대표적 분야로, 관세가 강화되어 국내 철강사들의 수출길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와 배터리 역시 관세 부과의 대상이 되었다. 자동차 산업은 미국 현지 판매 의존도가 높은 만큼 관세 인상으로 직접적인 가격 경쟁력 하락이 현실화된 상황이다. 소비재·가전 분야도 물류비와 부품 조달 비용 증가로 생산 원가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바람직한 대처는 다층적이어야 한다. 기업 차원에서는 미국 내 공장 증설이나 현지 합작 투자를 통해 관세 장벽을 우회하는 전략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동남아, 유럽 등으로 수출 시장을 다변화해 특정 국가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우리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협상 여지를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전략 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과R&D 투자를 확대해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당장은 미국 일부 산업과 정치 세력의 이익을 지키지만, 세계 경제와 교역 질서를 흔드는 불확실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이 거대한 파고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민관이 긴밀히 협력해 공급망 안정화, 시장 다변화, 협상력 강화라는 세 가지 축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원태(전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 수석 검사역, 현 김앤장 법률사무소 금융/경제부문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