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군청 군수실 사진출처-뉴팩트라인

전남 영광군이 올해 주민들로부터 접수된 소규모 개발사업 165건(총사업비 47억 8천만 원)을 2026년 6월까지 일괄 추진하겠다며 예산 편성·심의 절차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실시설계 용역 착수를 서둘러 발표한 것을 두고 지역사회 비판이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군이 발표한 일정이 예산이 이미 확보된 것처럼 보일 정도로 구체적이어서 “의회를 사실상 사전 무력화한 행정”이라는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군청 내부에서도 “이런 방식은 처음 본다”는 반응과 함께 실소가 흘러나와, 이번 사안은 단순한 절차 실수가 아니라 군정 운영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사건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논란은 영광군이 12월 실시설계 용역 계약, 내년 1월 용역 완료, 2026년 1월 설계 확정, 6월 준공률 60% 달성이라는 일정표를 언론에 직접 제공하면서 시작됐다. 겉으로 보기에 일정이 명확하고 추진 의지가 강해 보이지만, 정작 2026년도 본예산은 아직 의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는 행정의 기본 원칙인 ‘예산-심의-집행’이라는 순서를 뒤집는 행위이며, 지방자치제의 핵심인 의회의 예산 의결권을 무시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군은 165건 전체를 “상반기 집중 추진”이라는 표현과 함께 일괄 발표했지만, 개별 사업의 필요성과 절차적 타당성, 검토 과정, 주민 의견 수렴 절차 등 필수적인 사전 행정 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은 “사업이 이미 확정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의회를 압박하는 전형적 기정사실화 행정”이라는 평가를 낳고 있다.

지역 정치권과 행정 전문가들은 이번 발표가 지방행정의 근간을 흔드는 수준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한 전직 공직자는 “예산 심사도 전에 추진 일정부터 공개하는 것은 의회가 승인 거부하기 어렵도록 만드는 압박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의회가 반대하면 ‘군민 숙원사업을 막는 의회’라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의회의 여지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에서도 비판은 더 거세다. 한 주민은 “예산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공사 준공 목표까지 발표하는 게 정상인가. 군이 절차를 얼마나 가볍게 보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다른 주민도 “이런 방식이면 의회는 뭐하러 두나. 행정 절차라는 게 존재하기나 하나”라고 반문했다.

논란이 더욱 확산된 이유는 군청 내부에서도 혼란과 실소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여러 실무 공무원들은 “예산 확정 전에 이 정도 수준의 구체적인 로드맵이 발표되는 것은 전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아무리 급해도 절차가 있는데 너무 앞서나간 것 같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는 후문이다. 행정 실무자조차 공감하지 못하는 발표가 나온 점은 이번 사안이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닌 구조적 문제에 뿌리를 둔 결정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165건이라는 숫자 자체도 가볍지 않다. 소규모 개발사업이라 해도 지적 정리 여부, 주민 간 이해충돌 가능성, 현장 여건, 안전성, 환경 영향, 사업비 대비 효과 등 세밀한 검토가 필요한데, 이러한 과정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여부에 대해 군은 아무런 구체적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소규모 사업일수록 지역 주민들의 생활권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절차 하나하나가 더욱 중요하지만 이번 발표에서는 행정의 기본인 ‘설명 책임’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둘러 발표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2026년 지방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에서 대규모 사업 추진 계획을 홍보성 문구와 함께 발표한 점은 여러모로 정치적 오해가 발생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한 지역 원로는 “이 시점에 이런 사업을 발표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라며 “성과 부각을 노려 속도만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역 정치 분석가도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면 더더욱 발표 시점과 절차는 신중했어야 했다”며 “이런 식의 발표는 의심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군의회 역시 본예산 심사를 앞두고 격앙된 분위기다. 아직 공식 입장은 내놓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예산도 확정되지 않은 사업을 왜 먼저 발표했는가”라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회는 165건의 개별 타당성, 안전성, 우선순위, 주민 의견 수렴 여부, 추진 일정의 현실성 등 전반을 다시 점검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예산보다 발표가 먼저”라는 사실이 본예산 심사를 정면 충돌의 장으로 만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번 논란은 영광군의 해명으로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군은 주민 편익 개선을 위한 신속 행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재해위험지구 정비·위험도로 개선처럼 긴급한 사업들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은 ‘왜 예산 전 발표를 했는가’라는 핵심 질문에는 답하지 못하고 있다. 신속 행정과 절차 건너뛰기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주민 여론은 이러한 해명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한 주민은 “필요한 사업이라도 절차부터 지켜야 한다. 절차 없는 행정은 언제든 부작용을 낳는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군민 혈세가 들어가는 사업에 절차가 빠져 있다면 신뢰할 수 없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행정 순서 착오가 아니라 지방행정의 근본인 절차·투명성·설명·검증 등 네 가지 원칙이 동시에 흔들린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의회를 건너뛰고 주민 설명도 부족한 상태에서 추진 일정부터 발표한 방식은 행정 절차의 기본을 무시한 것으로 비춰진다. 군정 운영 방식이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지역사회는 이제 “군정 운영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절차를 존중하고, 설명을 충분히 하고, 의회와 협치하며, 사전 검증을 강화하는 것이 군정 신뢰 회복의 첫 단계라는 지적이다. 영광군이 이번 사안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할지, 아니면 주민과 의회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한 계기로 삼을지는 앞으로의 행정 방향이 말해줄 것이다.